1. 강원도 영월 여행
강원도 영월은 뛰어난 자연환경과 함께 수도권에서 가깝기도 하여 많은 사람들이 찾는 지역이다. 그리고 '라디오 스타'와 같은 영화의 촬영지 및 래프팅, 페러글라이딩 등의 레포츠 명소이기도 하여 항상 인기가 많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부모도 대왕대비도 없는 왕실에서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권을 빼앗긴 불운의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을 기억할 수 있는 곳으로 매우 특별한 여행지이다.
2. 조선 제6대 왕 단종의 생애
1441년 7월 23일(세종23년) 문종과 현덕왕후 권 씨 사이에서 원자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홍위이다. 8세가 되던 1448년(세종 30년)에 세손에 책봉되었고, 예문관제학 윤상으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1950년 2월(세종 32년)에 세종이 승하하고 문종이 즉위하게 되자 그해 7월 20일 왕세손이었던 홍위는 10세의 나이로 왕세자로 책봉되었으며, 1452년 5월 18일 문종이 승하 후 단종은 경복궁 근정전에서 12세의 어린 나이로 제6대 왕에 즉위하였다. 계유정난 이후 1455년 6월 11일 단종은 세조에게 왕위를 물려주고 15세에 상왕이 되었으며(재위기간 1452년~1455년), 박팽년, 성삼문 등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발각되어 모두 죽임을 당하는 사육신사건이 일어나 1457년(세조 3년) 노산군으로 강봉 된 뒤 1457년 6월 22일 창덕궁을 출발하여 7일 후인 윤 6월 28일 유배지인 영월 청령포로 유배되었다. 그해 9월 금성대군 유가 다시 그의 복위를 꾀하다가 사사되자 단종은 노산군에서 서인으로 내려지고 결국 중음을 강요당해 1457년 10월 24일 유시에 17세의 어린 나이로 영월 유배 4개월 만에 관풍헌에서 승하하였다.
3. 단종의 유배지 청령포 (국가지정 명승 제50호)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위치한 단종의 유배지로, 2008년 12월 국가지정 명승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찬탈당하고 1457년 노산군으로 강봉 되어 첨지중추원사 어늑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마치 섬과도 같은 곳이다.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홍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더렸다고 전한다. 그 해 뜻밖의 큰 홍수로 강물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작기게 되니 단종은 영월 동헌의 객사인 광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다 지금 청령포에는 영조 2년 (1726)에 세운 금표비와 영조 39년(1763)에 세운 단묘재본부사유지비가 세워져 옛일을 전하고 있다.
4. 조선 제6대 단종의 능 장릉 (세계유산, 사적 제196호)
1516년(중종 11) 장릉은 비로소 왕릉의 모습을 갖출 수 있었고, 1580년(선조 13) 상석과 표석, 장명등, 망주석을 세워 능역을 조성하고 1698년(숙종 24) 묘호를 단종, 능호를 장릉이라 하였다. 망주석은 조선 왕릉 중 유일하게 세호가 없다. 봉분 좌우에 세우는 기둥인 망주석에 조각하는 세호는 처음엔 별다른 형태를 갖지 못하다가 점차 동물의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 의미와 용도에 관해서는 특별히 정립된 이론은 없다. 신로 어로가 'ㄱ'자로 꺾여 있어 독특하다. 영월 장릉은 처음부터 왕릉으로 택지 된 곳에 조성한 능이 아니기 때문에 조선 왕릉의 구조와 다른 점이 많다. 홍살문에서 정자각으로 이어지는 참도는 일반적으로 일자형으로 조성되는데 반해 영월 장릉은 'ㄱ'자형으로 꺾여 있다. 현재 재실은 숙종 25년(1699) 건립되었고, 1932년에 중건하였다. 이곳에는 능을 지키는 참봉 1인과 수호군 9인이 기거하였으며 매년 단종제향을 지낼 때 이곳에서 젤을 준비하고 제기를 비롯한 각종 사용 기구를 보관해 오던 곳이라고 한다. 단종의 탄생과 유배, 죽음과 복권에 이르는 단종 관련 자료가 전시되어 있는 단종역사관도 함께 관람하면 좋다.